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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0

세계의 역사, 교과서와 다르게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저자가 서두에서 밝히듯이 터무니 없는 책입니다. 세계의 역사를 단 한권으로 정리하려고 하니까요. 이와 비슷한 책이 많지만 대개는 아주 요약하거나 일부만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거의 모든 일들을 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달성하기 힘든 목표이며 역부족일 겁니다. 750page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요.

예전에 500page 정도의 책 십여권으로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모든 나라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는 벅찹니다. 그런데 한국사에 대해서도 동일한 수준의 분량으로 읽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사를 십여권으로 다루었다면 이것도 내용이 부실하다는 말이 됩니다. 한국사 서적의 기준으로 서술하려면 150권 이상의 분량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이정도로 턱없이 부족하겠죠. 그런데 저자는 단 한권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실 관계의 기술은 불가능합니다. 저자 스스로 '위대한 인물' 위주로 이끌어 가겠다고 말합니다. 시기를 모두 8개로 나누어 8장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특정 인물이나 사건 위주로 설명하겠다고 해도 불충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오히려 일부만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앤드루 마'의 "세계의 역사 A History of the World"는 세계사를 알기 위해 읽기 보다는 이미 대부분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읽어야 효과적입니다.

내용 구성이 간략하여 이미 배경적 사실들을 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저자는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거짓말의 아버지'라는 평가도 있다고 전합니다. 콜럼버스도 '사기꾼'이란 평판이 있습니다. 저자 역시 헤로토투스처럼 자신의 상상력과 감상으로 각각의 챕터와 문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역사서는 사실과 이에 대한 저자의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사실이 전달되어야 독자가 읽으며 자신만의 상상력을 넣어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과정에 역사가가 끼어들게 됩니다. 글을 쓰는 저자가 가장 앞선 독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아예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저자의 편향적 생각의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됩니다. 이정도는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아예 사실관계를 바꾸기도 합니다. 재해석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는 기존 사건 목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려낸 조작입니다. 이런 이념적 사기꾼들은 아예 사실 관계를 정말로 '변경 조작'하기도 합니다. 사실 보다는 자신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당위성이 중요하니까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다시 일반적 역사서 서술로 돌아가 살펴봅시다. 내용이 방대하면 사건 기록으로 산만해지고 저자의 주장만 듣다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 됩니다. 두 가지 요소를 잘 조합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상당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고 가능한 공정하게 '객관적 해석'을 해야 합니다. 그런 사건 사이에서 '지혜'는 스스로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많은 역사가는 주관적 해석의 유혹에 시달리나 봅니다. 이 책도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저자의 주관적 주장을 객관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잘못된 해석과 틀린 사실에 반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서의 주의점을 적다보니 마치 엉터리 책처럼 보이는군요. 하지만 저는 매우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는 연대기 순으로 계속 이어지며 기술하지 않고, 인물 위주로 각각의 독자적인 에세이로 써놓았습니다. 8개의 챕터는 개별적인 수십개의 글로 구성되었습니다. 글 사이에 연결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내용의 해석에서는 엉터리에 가까운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간략히 사건을 정리하니까요. 반면에 기술되지 않고 비어 있는 사실들의 간격을 상상력으로 메꾸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기에 기존 지식으로 보완하며 읽은 겁니다. 오히려 재미가 더해진거죠.

이와 달리 잘 모르는 역사에 대해서는 간격이 너무 넓어 황당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데 저자는 의견을 던지고 있으니까요. 어쨋든 모르던 부분에 대한 설명은 결국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대한 정치, 군사적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개인적 사건들을 추적하는 기술이 남달랐습니다. 저자가 전문 학자가 아니라 정치 평론가 출신이고, B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이어서 그렇겠죠. 특정 인물의 개인사가 어떻게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가령 천연두를 극복한 제너의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에는 우두 치료법으로 어느 정도 해결방법이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제너가 완전히 독창적으로 해결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창조는 없습니다. 기존 지식의 모방과 조합으로 창조물을 만듭니다. 그렇기에 제너의 업적을 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민간에 치료법이 알려진지 이미 수십년 수백년이 자났는데도 과학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극복한 성과가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사건의 뒤를 캐는 저자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입니다.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독일 외무장관이자 관료인 치머만이 있습니다. 관료주의의 태동에 대해 말하면서 예로 들고 있습니다. 저자는 평범한 인물로 보이는 치머만이 누구보다도 더한 악당이지 않겠냐고 묻습니다. 관료로서 자신 앞에 놓인 일을 열심히했지만, 결국 인류사에 무수한 오점을 남깁니다. 특히 스위스에 있던 레닌을 열차에 태워 러시아에 투하시긴 일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마르크스 혁명이 성공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학살되고 인류의 불행이 되었습니다.

저자의 다음 문장은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마르크스주의는 거짓 '과학'으로 포장된 역사의 해석이었고, 나치즘은 인종을 사이비로 규정한 진화생물학이었다."

책 전체 성격을 대표하는 에세이는 '캐서린과 머거릿'입니다. 20세기 미국의 여권 운동가 2명이 70대 노파가 되어 '경구용 피임약'을 개발하게 시킵니다. 엄청난 연구비를 지원한 결과입니다. 이들의 20대부터 시대 변화를 따라가는 것도 좋았고, 개인의 활동을 생생하게 묘사해가는 것도 좋았습니다. 거대한 시대흐름과 주인공의 개인적 고민까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2015-03-15

중화민족의 탄생 - 중국의 이민족 지배논리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느끼지만,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화민족의 탄생"에서는 지금 중국이 어떤 체계로 구성되었으며, 주위의 이민족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설명합니다. 상당히 모순적인 논리 구조로 억압적 정복을 하고 있습니다. 만주족에 의해 노예상태로 떨어졌다가, 청나라가 주위로 침략하며 넓힌 영토를 물려 받은 한족이 지금 어떻게 주위 민족을 소멸시키고 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 중국은 쑨원의 신해혁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한족의 광복혁명과 황제에게서 국민주권을 찾으려는 공화혁명의 성격이 합쳐져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각각을 민족주의와 민권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광복혁명을 하여 '타타르 오랑캐'를 추방하면 '한족의 중국'과 이민족의 주위나라가 각각 생겨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정체가 이상한 '중화민족의 중국'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중화민족'은 한족, 티베트인, 만주족이 모두 하나의 민족이라는 괴상한 논리입니다. 한족이 만주족을 추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몽골 위구르 만주족과 같은 여러 투르크 계열 민족을 지배하는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바로 '중화민족'입니다. 투르크 계열은 터키부터 일본까지 이어지는 민족들을 말합니다. 북방의 초원의 길로 이어진 사람들이죠. 서융, 북적, 동이가 모두 해당됩니다.



한족의 머리 속에 있는 중화세계를 이해하려면 '대통일'과 '화이지변'의 두 가지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화이지변은 한족 민족주의로서 중화와 이적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민족차별'이 아니라 '문화수준의 차이' 개념이었습니다. 중국 중심부가 문명이 발전하였기에 주위 나라 보다 우월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중원에 사는 한족이 우수하다는 개념이 됩니다. 그런데 이민족이 기마력과 복합궁에 의한 강대한 군사력으로 오히려 한족을 정복하자 상황은 복잡해집니다. 이러한 관계 역전을 '화이변태'라고 합니다. 청나라 말기에는 한족이 오랑캐 대제국을 해체하고 이민족을 쫓아내어야 한다는 화이지변의 논리가 강해집니다.

대일통의 논리는 이와 반대입니다. 황제가 천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중국이 주위 모든 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 아니지만 통일을 하겠다는 말이지요. 화이지변과 상반되는 논리입니다. 한족 중심의 중화제국이 오랑캐를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만주족처럼 이민족이 전체를 다 지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누가 통치를 하던지 힘이 앞서면 사방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가지 논리가 모순되지 않고 일치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한족"이 지배하는 경우입니다.

처음에 노예 상태일 때는 화이지변의 논리를 앞세웁니다. 만주족을 배척하겠다는 구호를 앞세웁니다. 그런데 일단 광복혁명에 성공하자 화이지변의 논리는 사라지고 청나라 시기의 '대일통'으로 돌아갑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배자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대일통을 위해 '이민족'이란 용어 대신에 '소수민족'을 사용하고 보호를 한다는 명분으로 지배를 합니다. 다르지 않고 같다면서 '중화민족'이란 말을 합니다. 각각의 민족에게 독립 권리를 주지 않고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논리가 대일통입니다. "한족의 대일통"은 '화이지변'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중국은 한족의 18성과 이민족의 번부, 동삼성으로 구성됩니다. 중화민족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족을 중심으로 이러한 것들을(만, 몽골, 회, 티벳트) 우리에게 동화시켜 ..... 한족을 중화민족으로 고쳐서"
여기서 '동화'란 멸족의 의미입니다. 현재 언어가 사라진 만주족은 이미 사실상 소멸되었습니다. 이러한 '동화'는 '이민족 지역에 한족을 보내는 이주 기반의 식민정책'으로 완성됩니다.

보통 정복이라 하면 영토 점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 역사, 인종을 없애야 완성됩니다. 그래서 '인종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행태가 나옵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실제적으로 실행되는 형태는 '이주정책'이 대부분입니다. 정복한 인종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존재감을 줄이고, 자신들의 인종을 대체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중국이 한족의 대량 이주를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언어를 없애고 역사를 지우려 합니다. 특히 역사는 영토점거 전에도 가능합니다. 지형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가장 먼저 진행되고 이어서 문화와 역사를 변조합니다. 중국은 '중화민족'의 논리 위에서 고구려를 자국 역사로 넣고 있습니다. 조선족이 소수민족의 하나이기에 과거로 소급적용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동북공정'으로 조선족을 멸족시키고 한반도 점령의 논리근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고구려만이 아닙니다. 만주족(여진, 말갈)이 피지배계층이고 고구려 후예가 다스린 발해도 중국의 역사로 넣습니다.

이러한 이민족 지배 논리는 공산당도 유지하게 됩니다. 쑨원이 처음에 화이지변을 강조하다 권력을 잡고나서 대일통을 말했듯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로 모든 민족의 동등을 말하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민주족의 지배를 강화합니다. '대중화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우열 차별주의'에 기초한 '동화론'에 대하여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강하게 비판합니다. 일본인 저자는 "과거에 '아시아의 해방'을 내세우며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일본제국이 파경을 초래한 당시의 논리와 유사하다"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과거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미래에도 자기 나라가 올바르게 행동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의 정복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중국은 계속 주위 나라의 독립을 막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합니다. 위기와 위협에 대처하는 용기와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 참조1. 다문화 정책이란 용어에 대하여 >

현재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은 올바르지 않은 용어입니다. 실제로 다문화가 실행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국가 안에 다문화, 다언어가 있어서는 사회가 유지되지 힘듭니다. '다인종' 국가가 더 올바른 표현입니다. 외국의 다른 피부, 얼굴을 가졌더라도 이민와서 대한민국 국민이며 한민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신에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가령 새로운 '본'을 가지는 성씨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름도 한국식이어야 합니다. 외국 이름을 그래도 유지한다면 그 혹은 그녀는 사실상 침략군입니다.

다문화는 인정되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시하거나 추종해서는 안되겠죠. 한 나라 안에 다른 나라의 문화가 들어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공동체는 언어와 문화가 유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외모가 다르다고 '다문화'라고 한다면, 실제로는 그들을 대한민국 국민, 한민족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같이 사는 사람을 생김새가 다르다고 은연중에 차별하는 사고방식을 겉으로 멋지게 꾸며서 드러어낸 말이 '다문화'입니다.


< 참조2. 우리나라 역사로서 여진족의 가능성 >

유사한 맥락에서 발해만이 아니라 민주족이 다스린 나라도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계가 아니라면 방계의 역사로 다루어야 합니다. 만주족은 우리나라를 형님의 나라로 여겨왔습니다. 조선 시대에 와서 유교와 소중화 사상에 의해 청나라를 배척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왜 자신들의 편을 들지 않고 한족의 명나라 편을 드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터키가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자 이상하게 여긴 사회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그냥 우리를 좋아해주니 같이 좋아한 것이지 터키 사람이 말한 논리의 근간을 이해 못한 것입니다. 투르크 계열의 가장 서쪽의 터키가 형제라고 말한 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발해가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을까요? 어느 정도 차이는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모두 아주 유사했었을 겁니다. 만주족의 언어는 한국어와 몽골어 사이라고 보면 되겠죠. 말갈족은 고조선의 후예인 고구려 지배층과 같이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투르크계열의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한반도에 정착하여 인구가 급증하고 문화차이가 많아지기도 했지만 가까운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일본에 비하여 정말로 가까운 족속이 여진족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여진족이 한반도로 이주해 오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주족을 한반도의 방계민족으로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