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로맹 가리의 소설이다.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를 이미 수상한 작가는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더 수상하게 된다. 자신의 문학적 탐구를 위한 시도로서 가명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공쿠르 아카데미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상을 수여하게된다. 작품이 좋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네 권의 책을 내면서 동시에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도 출간하게 된다. '여인의 빛'이란 작품에 대해서는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를 표절하여 든다'는 혹평도 받았다고 하니 흥미롭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이 아닐까. 주인공 모모를 내세우지만 이 소설에서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대상은 다른 사람들이다. 작가는 그들을 모모의 눈으로 보면서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에서 우리가 살고 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소설 앞부분 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며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삶의 이야기는 다른 어떤 진실 보다 독자를 끌어당긴다.
처음 몇장은 인간의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1장 마지막에서 식료품점 주인이 모모에게 하는 행동에서 주인공만이 아니라 독자들도 희망을 맛보게 된다.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도 생긴다. 마치 기적처럼. 3장에서는 슬픔을 만나게 된다. 우는 것은 인간의 정상적 행동이다. 모모는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상실의 슬픔을 가장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픔.
저자는 3장에서 소설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11장에서는 결론 이후의 생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고 있다. 가장 서두에서 언급했던 희망을 다시 만나게 된다. 더 구체화되고 실재적인 삶의 희망. 나딘을 처음 만나고서 모모는 '갑자기 내 속에서 희망 같은 게 솟았다'라고 말한다.
1장 가장 앞에서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고 질문한다. 이에 하밀은 '그렇단다'라고 답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상식과 같은 이러한 대화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1장 마지막에서 주인공과 독자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제 11장에서 희망의 실체를 보게 된다. 아직 결말이 어떤 내용일지 알 수 없는 소설 앞부분이지만, 만약 해피엔딩이 된다면 나딘이 열쇠일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아니 반드시 희망이길 바라면서 뒷부분을 읽게 된다.
그리고 결말에 다가갈수록 오히려 현실에 가까워진다. 약간은 비현실적인 결말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너무나 현실적이고 사회뉴스에 나올법한 내용이다. 살고 죽는 이야기는 그렇듯 비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이고 뉴스와 같다. 묘한 뒤섞임과 복잡함이 우리 앞의 생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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