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3

스토너 Stoner - 존 윌리엄스

참 여운이 깊은 소설이다. 아마도 나는 소설 읽기에 대해 묘한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일부러 여러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들은 나름의 감동을 주지만 뭔가 모를 한계가 있다고 느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Stoner'를 읽으면서 정말로 대단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단지 내가 많이 안읽었을 뿐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스토너 Stoner 존 윌리엄스

자잘한 말솜씨나 문학적 기교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현란한 문장으로 아름다움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오랜 기간 인기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밋밋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처음에 책 뒤 페이지에 나온 설명을 참조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의 인생 이야기를 단순하게 적었다길래 그렇게 알고 책으로 들어갔다. 처음 몇페이지는 그랬다. 하지만 영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겪게된 사건은 주인공을 변화시킨다.

스토너 Stoner, 존 윌리엄스


스토너는 시간을 멈춰 세우는 문학의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일평생 하게될 사랑을 만났다. 그리고 65년의 생을 묵묵히 견디며 살게된다. 그런데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는 말의 의미가 뭘까? 평범해 보이는 인생에서도 몇번의 특이점이 출현한다. 평생의 악연인 아내 이디르를 처음 만날 때 주인공은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기쁨이 악몽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딸 그레이스는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그러나 모녀 간의 애정을 아내 이디스는 단절시키려 한다. 동료교수 로맥스와의 악연도 어쩌면 누구나 겪는 고통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캐서린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중심에 있다. 주인공의 밋밋한 인생과는 왠지 동질감을 주지 못하는 사건이다.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불륜이지만 스토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를 비판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처음 세미나에서 만난 이후 다시 인연을 되기까지 삶의 고통이 그를 괴롭힌다. 로맥스의 악의적 행동에 스토너는 항의하다가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11장 마지막에서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가 나온다. 연구에 몰두하던 서재를 뺏어간 아내와 학부 초년생에게만 강의하게 만든 로맥스로 인해 주인공은 무기력에 빠진다. 그때 연구실에서 창 밖의 겨울풍경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한 페이지 가득한 묘사는 스토너가 처음 문학과 만난 장면과 같은 부류이다. 인생은 여전히 신비롭다는 사실을 가끔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12장 중간에 캐서린을 다시 만나 이야기하고 떠나자, 다시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묘사하는 반 페이지의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정말로 놀라운 두 개의 문단 사이에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기쁜 대화를 배치해 놓았다. 스토너와 캐서린의 안타까운 이야기.

그리고 짧은 문장이 이어진다. "그렇게 그는 연애를 했다"

사실 스토너는 무언가 제대로 해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일반적 독자는 주인공이 여러가지 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주인공의 삶을 훌륭했다고 말한다. 최고로 인정받지는 못했을지라도 종신교수로 평생 문학연구를 하였고, 자신이 애정을 가진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번역자처럼 로맥스에 괴롭힘 당하고 이디스와 이혼을 못하고 딸 그레이스를 만나지 못하고 캐서린과 헤어지는 무능력을 안타까워한다.

과연 우리가 스토너라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죽으면서 주인공은 아내에 대해서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러라면"
결국 스토너가 이루지 못한 꿈과 실패는 그의 몫이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비판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마지막 장에서 문장 사이로 세번 이어지는 스토너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살면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너무나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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