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장편이 아니라 16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것입니다. 모두 비슷한 분량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표제작이 가장 분량이 긴 듯 싶습니다. 내용 전개도 복합적이고 결론도 묘한 여지와 여운을 남깁니다. 거의 모든 작품이 마지막에 반전으로 이루어졌는데 표제작은 모든 면에서 약간 더 복합적입니다. 장편소설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 이어질 듯 한데 단편 분량으로 끝나버립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16편의 작품들은 모두 놀랍습니다. 우선 장면과 인물 묘사가 정확하고 정밀하다고 해야할까요? 생각보다 긴 분량을 통해 나오는 인물에 대해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모든 소설이 이 정도로 충실히 설명하면서 시작하나요? 장편도 아니고 단편소설인데도요. 소설을 써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긴 문단을 설명과 묘사로 이어가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로맹 가리의 묘사에서는 그러한 면이 없다고 느껴졌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길게 설명을 쓰면서도 일순간 한 장면을 본 듯이 지나갈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제가 평소에 소설을 별로 읽지 못했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며, 로맹 가리가 워낙 대가여서 잘 쓰시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요, 저자의 다른 작품을 더 읽고 싶네요.
초반부 묘사 외에도 내용 전개가 이어지면서 심리적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도 놀라웠습니다. 인간 내면과 심리에 대해 저자의 깊은 통찰이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보면 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냥 빠져들기 보다는 어떻게 쓰셨나 살펴보는데 더 주력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소개글에서는 이 단편집이 한국 소설가들의 교과서 같다는 말도 보았습니다. 정말 교과서 본문 처럼 16편의 글들에 내용 구성이나 글 전개방법과 같은 부분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놓여진 극적 반전이 대단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근본적 현실을 다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결론에서 세상을 반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전이 사실은 특이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삶은 그러한 특별한 순간과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평범하다고 스스로를 여기지만 실제 근원을 보면 환상의 순간이 숨겨져 있습니다. 놀랍거나 끔찍하거나 말이죠. 저자는 그러한 진실을 독자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맹 가리를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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